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편이 그렇게 터진 이후라 속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있었고, "아마 실망하겠지"라는 생각을 반쯤 품고 극장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나오는 순간 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범죄도시 2는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범죄 액션 오락물이었습니다.
가리봉동 이후 4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1편의 배경인 가리봉동 소탕 작전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좁은 골목, 조선족 커뮤니티, 서울 변두리 특유의 거친 분위기가 사실감을 극대화했죠. 그런데 2편은 무대를 아예 베트남으로 옮깁니다. 이 선택에 대해 "로케이션 변화가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린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이국적인 배경이 마석도 캐릭터의 범용성을 증명하는 장치가 되더군요.
영화는 금천서 강력반이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으러 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범죄인 인도(Criminal Extradition)라는 국제 사법 절차가 스토리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범죄인 인도란 한 국가가 자국 내 체류 중인 범죄 혐의자를 요청국에 넘겨주는 국가 간 협력 절차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허점투성이인지를 보여주면서, 마석도식 해결법의 통쾌함을 더욱 부각합니다.
2022년 한국 영화 전체 관객 수가 약 1억 1천만 명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인 가운데, 범죄도시 2는 그해 단일 작품으로 약 1,26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 분명합니다. 단순히 팬덤이 몰린 게 아니라, 극장을 멀리하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마동석 vs 손석구, 두 배우가 만든 긴장의 축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사실 액션보다 두 배우의 캐릭터 대비였습니다. 마동석의 마석도는 이미 1편에서 완성된 캐릭터인데, 2편에서는 거기에 여유까지 얹었습니다. 복잡한 수사 기법이나 심리전 없이 주먹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인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관객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줍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린 감정이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 현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분석하며 처음 개념화한 용어입니다. 마석도의 타격 한 방에 극장 전체가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이 카타르시스 효과입니다.
반면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은 말 그대로 다른 결의 악역입니다. 1편의 장첸(윤계상)이 폭발적이고 광기 어린 스타일이었다면, 강해상은 냉정하고 계산적이면서도 순간적으로 짐승 같은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이 대비가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내면 깊숙한 인물을 조용히 연기했던 손석구가 이 정도의 빌런 포스를 뿜어낼 줄은, 솔직히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범죄도시 2의 액션 연출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 중 하나는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입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란 영화에서 대사, 효과음, 음악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여 감정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제작 기법을 말합니다. 마석도의 주먹이 닿는 순간 터지는 묵직한 타격음은 일반적인 액션 영화의 효과음과 결이 다릅니다. 극장 환경에서 이 사운드를 들으면 좌석에서 몸이 반응할 정도인데, 이게 스트리밍보다 극장 관람을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베트남 현지에서 마석도가 "한국인은 건드리는 거 아니야"라는 뉘앙스로 들이받는 부분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부조리하거나 무례한 상황에서도 절차를 따르고 참아야 할 때가 많은데, 그 억눌린 감정이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같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범죄도시 2의 핵심 관람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베트남 로케이션과 서울 한복판을 오가는 이중 공간 액션 구성
- 마동석(마석도)의 타격감 중심 액션과 손석구(강해상)의 냉혹한 빌런 연기
- 최귀화(전일만), 박지환(장이수)의 유머가 만드는 완급 조절
- 선악의 경계가 명확한 권선징악(勸善懲惡) 서사 구조
이 영화가 30대 남성에게 특히 먹히는 이유
범죄도시 2가 1,200만 관객을 넘긴 데는 단순히 액션이 재밌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마동석 영화 특성상 30~40대 남성 관객층이 핵심이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실제로 저 자신이 그 핵심 관객층 중 하나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30대가 되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납니다. 직장, 가족, 관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억제하고 상황을 읽으며 참는 일이 많아지죠. 그런 일상에서 마석도의 '계산 없는 정의 구현'은 일종의 대리 만족(Vicarious Satisfaction)으로 작동합니다. 대리 만족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행동을 타인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심리 기제를 뜻합니다. 스크린 속 마석도가 나쁜 놈을 응징할 때, 관객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쌓인 억울함을 함께 털어내는 경험을 합니다.
미디어 심리학 관점에서 이런 대리 경험은 오락 콘텐츠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극장 재방문 동기로 '현실 스트레스 해소'와 '강렬한 몰입 경험'이 상위 요인으로 꼽혔으며, 범죄 액션 장르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대표 장르로 분류되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명확한 선악 구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악역에게도 서사를 부여해야 깊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만큼은 그 반대가 옳다고 봅니다. 강해상은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돈을 위해 자국민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인간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없애는 것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선택이고, 그게 이 시리즈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범죄도시 2는 잘 만든 오락 영화입니다. 제 평점은 5점 만점에 4.5점입니다. 손석구의 강해상이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고, 박지환의 장이수 재등장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였습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베트남 현지 공안 캐릭터들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하는 점인데, 그건 이 시리즈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핵심인 영화인 만큼,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것의 체감 차이가 꽤 크게 날 겁니다. 범죄도시 3도 이미 나와 있으니, 2편을 먼저 보고 흐름을 이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