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별 기대 없이 봤습니다. 원작 웹툰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좀비물에 감동이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눈가를 닦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30대 후반 아이 아빠로서, 이 영화는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좀비 장르가 선택한 전혀 다른 문법
국내 좀비 장르물은 지난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기점으로 좀비물이 주류 상업 영화 시장에 안착했고, 관객들도 이제 피와 공포보다 그 안의 인간 드라마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발표한 2023년 장르별 관객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공포·스릴러 장르에서 관객이 꼽은 최우선 관람 동기는 "스릴과 공포"가 아닌 "감정적 몰입"이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좀비딸>은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이 영화의 핵심 장르 문법은 고어(Gore), 즉 혈흔이나 신체 훼손을 강조하는 극단적 공포 연출이 아닙니다. 고어 대신 선택한 것은 '생활 밀착형 소동극'입니다. 시골 마을이라는 폐쇄적 공간, 이웃의 눈초리, 정부의 좀비 감시 시스템이라는 세 겹의 압박 안에서 아버지와 딸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공포보다 '들킬 것 같은 긴장감'을 훨씬 더 정교하게 활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장르 분류로 따지면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에 가깝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질병, 사회적 금기처럼 본래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역설적으로 웃음의 재료로 삼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좀비가 된 딸에게 숟가락질을 가르치고, 횡단보도 신호를 가르치는 장면들은 그 정의에 딱 맞아떨어집니다. 웃기면서도 그 웃음 뒤에 "저게 실패하면 저 아이는 끝이다"라는 서스펜스가 촘촘하게 깔려 있습니다.
조정석이라는 배우와 부성애 코드의 충돌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해서 분석한 부분은 조정석의 연기 방식입니다. 조정석은 이 영화에서 이른바 '감정 대위법(Emotional Counterpoint)'을 구사합니다. 감정 대위법이란 장면의 표면적 정서와 배우의 내면 감정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연기 기술을 뜻합니다. 웃기는 상황에서 슬픔을 내장하고, 슬픈 장면에서 유머를 통해 감정 과부하를 분산시키는 방식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반부 닭고기로 딸을 길들이는 장면은 폭소가 터지는데, 그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딸의 눈빛 하나에서 인간의 흔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관객의 심장이 쿵 내려앉습니다. 이 교차점을 조정석은 계산적이지 않게, 정말 아버지처럼 연기합니다.
수아 역 배우의 연기도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이 배우가 사용한 건 팬터마임(Pantomime) 기법, 즉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서사를 전달하는 신체 연기 방식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좀비의 기괴함'과 '소녀의 순수함' 사이를 오가야 하는 극도로 까다로운 역할인데, 제가 직접 보면서 '이 배우 어디서 훈련받았을까'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부성애 코드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와닿은 데는 제 상황도 한몫했습니다. 30대 후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세상의 기준을 벗어날 때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환이 딸에게 세상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은, 저에겐 그냥 좀비 조련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매일 반복하는 행위의 극단적 은유로 보였습니다. 한국심리학회가 발표한 부모-자녀 관계 연구에서도, 부모의 자녀 보호 본능은 자녀의 사회적 정상성 여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이 영화를 어떤 기준으로 볼 것인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확인하면 좋은 핵심 관람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어(피와 살점)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시각적 자극보다 상황의 압박에서 나옵니다.
- 원작 웹툰 팬이라면 고양이 캐릭터 '애용이'의 실사화가 최대 볼거리입니다. CG와 실제 고양이를 혼합한 연출은 신의 한 수입니다.
- 어린 자녀와 함께 관람하기보다는 또래 부모, 혹은 부모님과 함께 보는 것을 권합니다. 후반부 감정선이 상당히 묵직합니다.
-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의 모든 시각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출 방식 면에서,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배경과 좀비 캐릭터의 병치(竝置)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각적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혼자 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볼 때 감정이 배가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봤는데, 영화 내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웃다가, 막판에 나란히 눈을 닦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노리는 감정 곡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웹툰 원작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장르적 리터러시(Genre Literacy)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장르 리터러시란 해당 장르의 관습과 코드를 읽어내는 관객의 능력을 뜻합니다. 원작 팬이라면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 원작을 존중하고 어디서 영화 문법으로 재해석했는지 추적하는 재미가 있고,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순수하게 영화 자체의 감정 구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였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았습니다.
4.5점짜리 영화를 만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올해 극장 나들이가 조금 더 공허했겠다"는 것입니다. <좀비딸>은 그런 영화입니다. 웃고 나서 가슴이 아리고, 극장 문을 나서며 핸드폰을 꺼내 부모님 번호를 찾게 만드는 영화.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