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한 결말인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는 영화,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언제 보셨습니까? 저는 오래전에 봤던 영화 한 편을 최근에 다시 꺼내 봤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게 얻어맞았습니다. 권수경 감독의 2016년작 <형>입니다. 조정석과 도경수, 이 두 배우가 형제로 만났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영화라는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았더군요.
줄거리
<사기꾼과 눈먼 동생의 불편한 동거>
유도 국가대표였던 동생 고두영(도경수 분)은 경기 중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시각장애를 얻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고 이후 두영이 세상 전체를 향해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는 점입니다. 스포츠 선수에게 신체 기능 상실이란 단순한 부상 그 이상입니다.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 절망 속으로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형 고두식(조정석 분)은, 사기 전과 10범의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입니다. 동생의 사고를 빌미로 가석방을 받아내 출소한 두식의 속셈은 단 하나, 동생 재산을 챙겨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순한 동기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완전히 다른 결을 갖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신파(新派)라는 용어는, 감정 과잉이나 억지 눈물을 유발하는 통속적 드라마 구조를 가리킵니다. 일부에서는 <형>이 이 신파 공식을 너무 충실하게 따른다는 비판을 하는데, 저는 그 비판 자체는 맞지만 그게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 배우가 그 뻔한 공식을 얼마나 정직하게 채워 넣느냐가 이 영화의 진짜 승부처였고, 그 싸움에서 두 사람은 분명히 이겼습니다.
연기력
조정석이 치고 도경수가 받는 구조
버디 무비(Buddy Movie)란 성격이 다른 두 인물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갈등하고 성장하는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형>은 이 버디 무비 구조를 형제라는 관계에 얹어, 단순한 케미 이상의 감정을 끌어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도, 전반부에서는 웃음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조정석의 연기는 장르를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합니다. 얄밉고 이기적이어야 할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관객이 그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절묘한 균형을 잡습니다. 욕설을 내뱉어도 정겹게 들리는 건 그만이 가진 고유한 리듬감 덕분입니다. 후반부에 감정이 터지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분명 예측된 장면인데도 제 눈물샘이 그냥 작동해 버렸거든요.
도경수의 연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는 편입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부터 낮은 기대치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받는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고 내린 결론은, 도경수는 '표정을 줄이는 연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겁니다. 시각장애 연기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과잉 표현입니다. 그런데 도경수는 오히려 눈동자의 움직임을 죽이고 턱선의 긴장감만으로 내면을 전달하는 쪽을 택했는데, 이게 조정석의 외향적인 에너지와 맞물려 균형을 잡습니다.
<형>이 개봉한 2016년에 한국 관객이 영화관에서 직접 보고 평가한 결과, 네이버 영화 관람객 기준으로 9점대 초반의 평점을 기록했습니다(출처: 네이버 영화). 이는 신파 논란에도 불구하고 실제 관람객들이 두 배우의 연기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는 방증입니다.
형제애
<가족이라서 더 잔인하게 상처 주는 사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30대가 되어 다시 이 영화를 보면, 20대 때와 전혀 다른 지점에서 눈물이 납니다. 20대에는 두식이 두영을 위해 희생하는 후반부 장면에서 울었다면, 지금은 형제가 밥상 앞에 마주 앉아 퉁명스럽게 욕이나 주고받는 장면에서 더 울컥합니다. 사회생활의 무게를 아는 나이가 되면, 그 투박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진한 애정 표현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극적 경험을 통해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영화 속 두식과 두영의 관계가 관객에게 주는 감정적 효용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형제에 대한 감정을 스크린 위의 두 사람이 대신 터뜨려줄 때, 관객은 기꺼이 눈물을 내어줍니다.
한국가족학연구에 따르면, 성인 형제 관계는 유년기의 갈등과 경쟁 구도가 성인이 되어서도 잠복되어 있다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재표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가족관계학회). 두식과 두영의 관계가 많은 관객에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극적으로 과장된 설정이지만, 그 감정의 결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총평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속는 영화>
이 영화의 장단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두 배우의 앙상블 연기, 특히 전반부 코믹 호흡은 국내 버디 무비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 코미디에서 감정 드라마로 이어지는 감정 빌드업(감정을 단계적으로 축적해 클라이맥스에 터뜨리는 구성 방식)이 매끄럽게 작동합니다.
- 예측 가능한 플롯 구조는 분명한 한계입니다. 후반부 전개가 어디로 흘러갈지 30분 전에 이미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 두영에게 중첩되는 시련의 강도가 조금 과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절제했다면 여운이 더 깊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신파의 함정에 빠진 영화'보다는 '신파를 두 배우의 힘으로 겨우 구해낸 영화'라고 봅니다. 감독의 연출보다 배우들의 몸값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라는 점에서,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3.5점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가 끝난 후 핸드폰을 들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형한테 카카오톡 한 줄 보내고 싶어지는 그 충동, 그게 이 영화가 해낸 일입니다.
<형>이 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여전히 통하느냐는 질문에는, 두 배우의 이름 석 자가 답이 됩니다. 다시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혼자보다는 형이나 동생이 옆에 있을 때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무슨 말이든 하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