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7 한국영화 <하이재킹> 리뷰 (실화, 하정우, 여진구) 주말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 앉을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뭔가 묵직한 걸 보고 싶었는데, 지인 추천으로 틀었다가 두 시간 내내 숨을 참으며 봤습니다. 영화 하이재킹 얘기입니다. 1971년 실제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단순한 재난 액션으로 보기엔 제게 좀 더 많은 걸 남겼습니다.실화가 만드는 서스펜스, 왜 더 무거운가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극적 긴장감의 밀도였습니다. 재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클로즈드 스페이스 내러티브(closed-space narrative) 기법이 여기서도 핵심으로 작동합니다. 클로즈드 스페이스 내러티브란 탈출이 불가능한 밀폐된 공간 안에서 갈등을 압축적으로 전개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버스, 잠수함, 우주선이 자주 쓰이는 배경이지만,.. 2026. 4. 24. 한국영화 <방자전> 리뷰 (캐릭터 재해석, 서사 구조, 감상평)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춘향전이라길래 뻔한 신분 차이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10분도 안 돼서 그 기대가 완전히 박살 났습니다. 춘향도, 몽룡도 아닌 방자가 스크린 한가운데 서 있었고, 저는 그 순간부터 이 영화에 완전히 끌려들어 갔습니다.고전을 해체한 캐릭터 재해석, 그 도발적인 서사 구조영화 방자전은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서와 인과관계의 틀을 말하는데, 방자전은 원전인 춘향전의 주인공을 주변인으로 밀어내고 머슴 방자를 중심축으로 놓음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이야기의 질서를 해체합니다.제가 직접 봐보니, 이 구조 전환의 힘은 단순한 반전 이상이었습니다. 몽룡(류승범 분)은 이 영.. 2026. 4. 23. 한국영화 <아가씨> 리뷰 (미장센, 서사구조, 해방감) 박찬욱 감독의 는 2016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벌컨상을 수상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예쁜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30대 후반이 되어 다시 꺼내 보니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세 겹의 시선이 만드는 미장센과 서사구조이 영화는 비선형 서사구조(Non-linear Narrative)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비선형 서사구조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반복 제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1부에서 내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장면이 2부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뒤집히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2부가 시작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1부 내내 숙희(김태리 분)의 눈을 빌려 히데코(김.. 2026. 4. 21. 한국영화 <길복순> 리뷰 (액션 연출, 킬러 세계관, 전도연)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낮에는 숫자와 데이터로 상대를 설득하던 사람이, 문을 열자마자 사춘기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경험. 영화 길복순을 보면서 처음 30분 동안 소름이 돋은 게 바로 그 장면들이었습니다. 이 영화, 단순한 킬러 액션물로 보기에는 뭔가 많이 다릅니다.변성현 감독의 액션 연출, 어떻게 만들어졌나길복순의 액션이 다른 킬러 영화들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이른바 시뮬레이션 액션(simulation action) 기법에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액션이란 주인공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전,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교전 시나리오를 빠르게 계산하고 최적의 수순을 선택하는 과정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연출 방식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 2026. 4. 19. 한국영화 <도둑들> 리뷰 (캐릭터, 케이퍼무비, 반전) 도둑 영화는 결국 '누가 무엇을 훔치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다시 꺼내 보고 나서, 이 영화가 정작 훔치는 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관객의 감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단순 오락 영화로 소비하기에는 인물들의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10명이 한 화면에 있는데 아무도 묻히지 않는다는 것, 믿으시겠습니까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여기서 케이퍼 무비란 절도나 강도 등 범죄 계획의 준비부터 실행까지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범죄 영화 장르를 의미합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이 장르의 가장 큰 약점은 인물이 많아질수록 개별 캐릭터의 서사가 얇아진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2026. 4. 18. 한국영화 <설계자> 리뷰 (심리 스릴러, 강동원, 미장센)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강동원 얼굴 보러 가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꽤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잘 만든 범죄 스릴러 한 편이 아니라, 제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심리 스릴러가 건드린 것: 의심이라는 이름의 지옥영화 속 주인공 영일(강동원 분)은 살인을 사고사로 위장하는 '설계자'입니다. 버스 급정거, 빗길 미끄러짐, 전기 누전처럼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을 치밀하게 조합해 완벽한 범죄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영화가 가장 영리하게 활용하는 장치가 바로 서스펜스(suspense)입니다. 서스펜스란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관객이 느끼는 긴장과 불안감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총성이나.. 2026. 4. 17. 이전 1 2 다음